여의도 새성전의 건축 공사가 시작하자마자 중동 석유
파동이 일어났으며,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이로 인해 건축 자재 값은 폭등하고 많은 성도들이 실직하여 헌금이 줄어든데다 은행의 융자도 축소되어 부채 압박이
극에 달했다. 여기에 건축 기술상의 문제까지 겹쳐서 교회 건축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조목사는 매일 밤 골조만 앙상하게 올라간 성전 지하실에서 뚝뚝 떨어지는 녹물을 맞으며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눈물로 부르짖다가 지쳐서 시멘트 바닥에 쓰러질 때가 수없이
많았다.

그러자 성도들 사이에도 뜨거운 마음으로 '교회 살리기
운동'
이 일어나 매일 저녁 수백 명의 성도들이 지하실 바닥에 함께 엎드려 간절히 금식하고 기도했다.

그 결과 성전은 다시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하여 마침내 1만명을 수용하는 성전이 완공되어, 1973년 9월 23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헌당 예배를 드렸다.

여의도성전이 완공된 1973년에 교회 부흥의 주요 역할을 한 기도원 성전이 건립되었다. 기도원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자
1982년 9월에는 1만석을 가진 새 성전을 완공하여 헌당 예배를 드렸다. 최자실 목사가 경기도 파주군에 있던 교회묘지
창고에서 철야하고 금식하던 자리에서부터 발전한 기도원은 오늘날에는 하루 평균 3천 5백여명의 성도들과 매년 1만여명
이상의 외국인 성도들이 찾아오는 국제적인 금식기도원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여의도로 이전한 이후, 교회는 급속도의 수직적인 성장을
보였다. 1979년에는 10만 성도를 돌파했고, 1981년에는
2배로 증가한 20만 성도가 되었다.
교회의 내적 성숙과 교육을 위해 제 1, 2교육관을 세우게
되었으며, 선교센터를 세워 선교사를 훈련시켜 파송하여
해외선교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교회 명칭을 현재의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바꾼 1984년에는 40만성도가 되었으며 1992년에는 70만명을 돌파하였다.
거리가 먼 지역에 지성전을 건립하기 시작, 지역사회
복음화의 효율적 방편으로 여러 교회를 독립시키게 되었다.

조목사는 47년간의 목회 생활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감사드리며 현재 75만명의 재적 성도를 한결같은
자세로 섬기고 있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2천년부터 향후 10년 동안의 목표는 국내 전역에 5백내지 5천 교회개척, 5백 기도처 설립, 인터넷 방송을 통한 전세계 선교 확장, 제 3세계와 북한을 비롯한 해외 선교의 장을 적극 넓히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조목사는 전 성도들과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새로운 결심과 믿음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