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설립자 조용기 목사
1983년 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을 설립하고 이어 1986년에는 순복음영산신학원을 설립한 조용기 목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으며, 미국인 켄 타이즈 선교사가 인도하는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 후 타이즈 선교사의 설교를 통역하고, 많은 신앙 서적을 읽으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어서 갈등하며 금식기도를 하던 어느 날 밤 환상 중에 찬란한 광채 속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성령충만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날 밤 복음 증거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확신한 조 목사는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나게 된 최자실 목사와 1958년 창립 예배를 드렸는데 교회가 점점 부흥하여 성도가 50여 명에 이르자, 최 목사의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그 당시는 6.25 전쟁 직후라 조 목사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삼중축복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 각종 질병이 치유되었으며, 성도들의 삶이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후 조 목사는 서울 서대문 로터리에서 샘 토드 목사가 인도한 부흥성회에서 통역을 맡았는데 그때 많은 신유의 역사와 기적이 나타났다. 성회를 마치고 조 목사는 그 자리에 천막을 치고 제2의 개척 예배를 드렸는데, 교회가 계속 부흥하여 1961년에 1,500석의 성전을 완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사역에 전념하던 조 목사는 몇 차례 체력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모세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자신의 업무를 분담했던 것을 깨닫고 서울 지역을 20개 지역으로 나누어 구역을 조직하게 되었다. 구역을 조직한 지 3년 후에는 성도 수가 8천여 명에 이르러 주일예배를 3부로 나누어 드리게 되었다. 하지만 날로 늘어나는 교인들을 수용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여의도에 대지를 구입하여 1973년에 1만 명을 수용하는 성전을 완공하게 되었다.
여의도로 교회를 이전한 후 교회가 급속도로 부흥하여 1979년에는 10만 성도를 돌파하게 되었고, 1981년에는 20만 성도가 되었다. 그리고 1985년에는 50만 성도가 되었으며, 1993년에는 70만 명을 돌파하여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 후 여의도와 거리가 먼 지역에 지성전을 건립하여 20여 개의 교회를 독립시키게 되었고, 국내 전역에 기도처를 세우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나아가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미디어를 통해 선교의 장을 더욱 확장하게 되었다.
조 목사는 한국교회가 ‘교회 세습’ 문제로 논란이 한창이던 2008년에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교회를 이영훈 목사에게 위임하고 아름답게 은퇴하였으며, 은퇴를 한 후에도 국내외 선교 사역에 전심전력하다 2021년 9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저서 (총 621권, 2008년 5월 현재)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새천년을 위한 영적리더십』 등 한국어 저서 325권
-『The Four th Dimension』 등 영문 저서 49권 및 번역서 247권
- 세계 58개 출판사들과 공식적으로 판권 계약을 하여 총 40개 언어로 출간됨
* 작사
-『얼마나 아프셨나』, 내 평생 살아온 길』 등 복음성가 30여 곡